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이크 타이슨 (문단 편집) == 평가 ==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견인했던 복싱 헤비급 역사상 최고의 슈퍼스타로 WBA, WBC, IBF 3대 세계 기구를 모두 석권했을 만큼 뛰어난 기량을 지닌 복서였다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처럼 엄청난 인기와 명성에도 불구하고 복싱 매니아들 및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잘 쳐줘야 프로복싱 역대 TOP 50 끝자리에 들까말까하는 수준인데 이유는 전성기가 굉장히 짧았기 때문이다. 트레버 버빅을 제압하고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을 때가 약관 20세인데, 이후 순식간에 3대 기구를 석권하고 더글라스에게 패해서 타이틀을 잃은게 23살 때 일이다. 요컨대 평범한 복서들이 데뷔전을 치르고 있을 시기에 그는 세계 챔피언이 되었고, 그들이 경력을 쌓을 시기에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러한 파멸적일 정도로 굴곡이 심한 선수 생활 때문에 팬들 사이에선 미완성 복서라는 인식이 강해서 만약 복서로서 완성되었다면 권투 역사가 바뀌었을 거라고들 얘기하지만 이미 다 지나간 이야기이다. 옛날 자료이기는 하지만, ESPN에서 뽑은 역대 최고의 복서 순위에서는 50위로 뽑혔다. 그 [[메이웨더]]가 48위이고 [[매니 파퀴아오]]는 순위에도 없으며 복싱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 [[슈거 레이 레너드]]가 12위, 역사상 최강의 미들급 챔피언 중 한명인 [[마빈 해글러]]가 35위이다. 사실 한국인들은 이름도 모르는 20세기 초중반 복서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역사성을 고려한 보수적인 랭킹이긴 하다. 10위 이내를 보면 대중적으로 알려진 복서는 2위의 [[무하마드 알리]], 6위 [[로베르토 두란]], 더 파이팅 덕에 알려진 [[잭 뎀프시]] 정도가 끝이다. Top 10은 두란과 알리를 제외하면 모두 1960년대 이전에 활약했던 선수들이다. 아래 복싱 역사상 최고의 피지컬을 지녔다고 칭송받는[* 단, 어디까지나 라이트 헤비급 시절에 나이도 최소 20~30줄이었던 전성기 기준. 헤비급으로 올라가서 노쇠하기까지 한 이후는 쳐주지 않는다.] [[로이 존스 주니어]]는 46위, 괴물 [[조지 포먼]]은 20위, 1위는 그 어느 매체든 거의 무조건 1위로 뽑는 [[슈거 레이 로빈슨]]이다 [[http://www.espn.com/sports/boxing/greatest/featureVideo?page=greatest4150|ESPN 랭킹 보기.]] 이름값 때문에 "겨우 50위?" 라는 반문을 하곤 하지만 당대 동급의 실력자였던 [[에반더 홀리필드]], [[레녹스 루이스]]에게 모두 패했고 자기 관리 실패로 전성기가 3년이 채 안 될 정도로 짧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첫 챔피언이 된 시기가 86년도이고, 더글라스에게 패한 때가 90년도이다. 데뷔에서부터 전성기로 잡으면 수감까진 6년이다. 헤비급 한정으로 보면 역대 10위권 정도에 포진되어 있다. 2017년 5월 링지에 올라왔던 조사에 따르면 30여명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한 결과 역대 헤비급 9위에 올랐다. 이는 [[레녹스 루이스]]나 [[에반더 홀리필드]]보다 2단계 높은 수치[* 공동 11위]로 상당히 의외의 결과인데, [[레녹스 루이스]] - [[비탈리 클리츠코]] - [[블라디미르 클리츠코]]로 이어지는 아웃복싱 스타일로 헤비급 자체의 흥미가 떨어진 것에 대한 향수로 해석될 수도 있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홀리필드-루이스가 타이슨보다 확실히 높은 평가를 받는 경향이었다.] 이 조사에서 그보다 위에 있는 선수들은 대부분이 전설과 같은 선수들인 데다가 절반 가까이가 1960년대 이전 선수들이기 때문에[* 앞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복싱은 보수성이 심해서 1960년대 이전 선수들에 대한 고평가가 상당하다.] 1980년대 이후로 한정하면 [[조지 포먼]] 정도만이 그의 위에 있는 셈이다.[* 해당 투표는 크게 트레이너/언론인/프로모터/복싱 역사가로 분류되어 실시되었는데, 의외로 복싱 역사가들에게 가장 높은 순위인 7위를 기록했다. 이는 8위였던 포먼보다도 높은 평가를 받은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절대 대단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역대 최고라고 불리기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지, 최소한 WBA, WBC, IBF 헤비급 3대 세계 기구를 모두 통합할 정도의 실력은 보유하고 있었다. 그 오랜 복싱 역사 속에서 헤비급 선수들만 헤아려도 최소 수만 명은 나왔을 텐데 헤비급 한정으로도 10위권은 된다는 거고, 모든 체급으로 쳐도 100명 안에는 들어간다는 소리. 거기다 복서로서의 스타성 하나는 대단해서 복귀 후엔 90년대 당시 경기당 평균 대전료가 3,000만 달러가 넘었고 홀리필드전에선 한 경기 대전료가 5,000만 달러를 넘겼을 정도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흉폭한 카리스마와 화려한 경기 스타일은 물론이고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말빨도 대단해서 당시 엄청난 팬과 안티들을 몰고 다녔다. 인터뷰에서 '공개 자위를 해도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꽉 채울 수 있다'고 장담했을 정도. 아무튼 상기한 카리스마적, 문제아적 행보로 [[오스카 델라 호야]]와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가 등장하기 전까지 미국 복싱계 최고의 아이콘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가 링을 떠난 뒤 헤비급의 흥행력은 비탈리 클리츠코와 블라디미르 클리츠코라는 두 거성이 주도하는 유럽으로 완전히 넘어갔고, 동시에 멕시칸 복서들의 주 무대인 라이트, 웰터, 미들급 등 경중량급이 미국 복싱계 대세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짧은 전성기에도 불구하고 미국 헤비급 최후의 아이콘으로서 여전히 많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이는 마이크 타이슨 같은 방식의 복서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헤비급에서는 단신임에도 뚱뚱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마치 전광석화 같은 인파이팅 등 이런 방식으로 챔피언에 나타나야 할 것 이다. 물론 그 챔피언은 제 2의 마이크 타이슨이라 불리겠지만.][* 이후 미국 헤비급 복싱에 신성으로 디온테이 와일더가 나타나긴 했지만 와일더는 그 타이슨이 우습게 보일 정도로 돌주먹이었지만 역시 타이슨이 우습게 보일 정도로 미완성된 복서였기 때문에 결국 완전체 복서인 타이슨 퓨리에게 2패나 당하고 말았다.][* 물론 디온테이 와일더가 완성되지 않은 복서라고는 하지만 나름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전술이 있었고 그 전술의 완성도 자체는 매우 높았다. 문제는 와일더는 결국 원툴 복서라는 것. 자신의 KO공식을 그대로 따라해서 통하면 상대 선수를 쓰러뜨릴 수 있지만 그 공식에 어긋나는 타이슨 퓨리같은 선수가 상대일 때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힘을 쓰지 못 했다. 그래도 역시나 전술의 완성도는 높았고 또 보완을 한 3차전에서는 괜찮게 싸우긴 했지만 밑천이 떨어진 후에는 역시나 퓨리의 승리였다. 어떤 의미로는 하필 동시대에 퓨리라는 걸출한 복서가 있었고 하필이면 그 퓨리가 와일더의 천적인 스타일이라서 손해를 본 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